헤르난 바스는 2000년대 초반 뉴욕 미술계에 등장한, 현대 미술계의 핵심 작가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쿠바계 예술가일 것입니다. 유일하지만 굉장한 임팩트를 가진 화가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마이애미 출신의 쿠바계 미국인 화가 헤르난 바스(b.1978)는 19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널리 퍼진 탐미주의 미술인 댄디즘(Dandyism)과 데카당스(Decadence), 그리고 낭만주의(Romanticism)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해 왔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마이애미와 디트로이트를 오가며 작품 활동 중인 그는 화려한 색채를 이용해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몽환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그려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경계에 서 있는 소년들이 등장합니다. 이 소년들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를 나타냅니다.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것처럼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존재입니다. 또한 풍부한 색채와 섬세한 필치로 가득 찬 그의 회화는 현대인의 두려움과 불안한 심경을 사춘기 소년의 모험, 초자연적인 서사, 신화, 종교적 이야기, 고전 시의 스토리텔링을 빌어 엮어냅니다.
헤르난 바스는 미술애호가이자 세계적인 컬렉터로 유명한 메라&도널드 루벨(Mera & Donald Rubell)부부에게 일찍이 재능을 인정받아 뉴욕 브루클린미술관, 독일 하노버 쿤스트페어라인, 스페인 말라가 현대 미술관 등 전 세계 굴지의 미술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베니스 비엔날레(2009)와 휘트니 비엔날레(2004)를 포함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뉴욕 휘트니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L.A 현대 미술관, 온타리오 미술관 등에 영구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이 이미 한국을 다녀갔는데 정보를 알지 못해서 감상할 기회를 놓친 것이 무척 아쉽습니다. 몇년전 마곡에서 전시회를 개최했다니 더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있는데.. 그 후 Frieze Seoul인가 Kiaf Seoul인가에서 작품 한 점을 실물로 감상해 본 것이 전부입니다. 에휴...
초기작품 감상
초기에 제작된 그림들은 비교적 복잡하게 묘사되어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의 캔버스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공력을 기울여 작품 제작했음을 반증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비교적 짧은 기간이 지나고 난 후, 그의 그림은
심플하며 우화적이고 미소년적 감성을 표출하는 독특한 특성을 탑재하게 됩니다.
작품 <밤의 비행 또는 한밤중의 이동, 또는 나의 즐거운 길>에서 헤르난 바스는 하늘과 땅과 물이 하나로 융합된 듯한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인 청년은 거대한 자연 속에서 홀로 외로이 앉아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대자연을 향유하는 새들은 서로 짝을 이루거나 무리를 지어 노닐고 있어 청년과 대조적입니다. 새들의 등장과 청년의 고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느낌입니다.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몽환적인 풍경이 청년의 비전을 지워버린 듯한데.. 그래도 청년은 청춘에 대한 갈망이나 동경의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고 내재해 있겠지요?
헤르난 바스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빌렘 드 쿠닝(1904~1997)을 존경하였던 모양입니다.
이 작품 제목 <다윗과 골리앗(David & Goliath)>에서 다윗은 자신이며 골리앗은 빌렘 드 쿠닝을 지칭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작품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요? 성경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쳐 이기는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바스는 그 결과까지 패러디하고자 하였을까요?
일단 이 그림은 아름드리나무가 우거진 수풀 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이층집 가까이 다가간 붉은 옷차림의 소년을 묘사하고 있으며, 오마나 대저택의 창문이 깨져 있는 모습입니다. 나무들도 뿌리가 뽑혀 있군요. 소년이 새총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깨진 유리창은 소년의 작품으로 판단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마도, 흠모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대가의 예술세계와 자신의 막막하고 절실한 현실을 대비시킨 여파로 마치 유리창 깨기라는 몸부림치듯한 행위를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한 모든 요소를 포함하여 전체적으로는 한 편의 심정 판타지를 직조해낸 것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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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phis Living(전시회)
<Memphis Living> 연작은 이태리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Ettore Sottsass(에토레 소트사스)가 밀라노에서 설립한 단명한 멤피스 그룹(Memphis Group)의 디자인에 대한 경의입니다. Bas는 주로 대중문화 참조 및 시뮬레이션을 통해 멤피스 스타일을 처음 접했고 나중에야 미학적 운동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룹리더인 건축가 겸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의 스타일에 매료되었던 듯합니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 팝과 함께 접했던 멤피스 스타일에 대한 추억이 무의식에 내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 소환된 것이라 할 것입니다. Tim Burton(팀 버튼, 미 영화감독)의 Beetlejuice(비틀 주스, 1988, 코미디)나 어린이 TV 쇼인 Pee-wee's Playhouse(피위의 플레이하우스)와 같은 영화의 크고 작은 화면에서 "멤피스 룩"이 널리 퍼져 있었던 시절, 아마도 Bas의 10대 이전의 시기에 해당하는 그 시절에 접하고 입수되었던 미학적 본질이 그의 내면에 깊은 뿌리를 내렸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제 인생 1년 차를 보내는 손녀 '여름'이는 저를 보러 올 때마다 두 눈을 반짝거리며 빤히 쳐다보는데 그 녀석의 기억에도 접하는 모든 것들이 축적되고 있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헤르난 바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미소년의 정체성은 청소년과 성인의 중간 지점에 머무르며 연약함과 우울한 내면을 소유한 모습으로 표출됩니다. 그리고 성 정체성에 대한 모호함도 깍두기처럼 버무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헤르난 바스가 퀴어적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멤피스'에서 사는 것은 밝은 색상, 패턴, 불편한 좌석에 대한 사랑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열정적인 순간이었고, 대담하게 형성되었으며, 엄청나게 영향력 있는 운동이었으며, 우리의 후방 시야를 다시 사로잡고 있습니다."라고 헤르난 바스는 말했습니다.
자서전적인 작품인 Memphis Living(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에서 우리는 스튜디오 벽의 캔버스에 그려진 유령 장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티스트가 유령 친화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암튼,
헤르난 바스는 마치 초자연적인 패션을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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