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 Tansey(마크 텐시)
1949년 캘리포니아주 산 호세(San Jose)에서 태어난 텐시는 미술사학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미술을 접하였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아트센터 디자인 대학에서 수학했고, 이후 뉴욕시 헌터 칼리지(Hunter College)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뉴욕에 거주 중에 있습니다.
직업 화가의 길로 나서기 전에 텐시는 광고, 대중 매체 이미지, 개인 사진, 역사적 회화 등 다양한 이미지들을 수집했으며, 이 모든 준비과정은 그의 예술 활동에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습니다. 고도의 계산하에 주제를 표출해 내는 단색 회화(박서보를 축으로 하는 한국 단색화와 다른 순수한 의미자체로의 단색화)로 유명한 마크 텐시의 작품은 미술사에 대한 깊은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작업해 온 그는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를 구축한 느낌입니다.
구체적으로 텐시는 자신이 수집한 이미지들의 단면을 복제하여 순백색으로 프라이머 처리된 캔버스에 작업하고, 단색 안료를 섬세하게 덧칠하여 사진처럼 사실적인 비네트(vignettes, 삽화)를 만들어냅니다. 엄격한 듀오톤으로 구성된 이 그림들은 마치 과학적 삽화를 연상시키는 정교한 사진적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젯소(gesso : 석고가루 or 흰색 페인트 혼합물)를 바른 후 물감을 씻어내고, 붓질하고, 긁어내는 과정을 통해 완성됩니다. 첫눈에 드러나는 그의 이미지들은 직설적인 서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얄밉고 유머러스한 표현, 시각적 언어유희, 또는 현대 이미지에 대한 신랄한 해석이 담겨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난해한 문학적, 철학적, 역사적, 수학적 개념에 대한 시각적 추론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텐시의 그림들은 회화 작품이 "은유적이고, 수사적이며, 변형적이고, 허구적"이라는 관념에 정면으로 맞섭니다. 텐시는 끊임없이 콜라주, 스케치 작업을 하고, 수집품을 늘려가고 있지만, 고된 작업 과정과 디테일에 대한 집중력 때문에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작품 수는 적으며, 2년에 한 점 정도 제작해오고 있습니다. 오 마이 갓뜨! 이런 아티스트가 있다니!
이 냉소적인 그림에서 한 마리의 소가 파울루스 포터(Paulus Potter)의 1647년작 <어린 황소>(현재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앞에 서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소가 허구와 현실을 구분할 수 있을지 궁금해합니다.
소는 인사를 건넬까요,
아니면 오른쪽 벽에 걸린 모네의 1891년작 <곡물더미(Snow Effect)>에 감탄할까요?
텐시는 회화 전통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으로서 현대 미술에서 재현의 역할에 대한 비판을 제시합니다.
그가 그리자일(grisaille), 즉 회색 단색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학술 회화의 전통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스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던 그의 경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차용 전략은 텐시가 활동하는 뉴욕에서 1980년대 미술의 많은 부분을 정의합니다.
액션 페인팅 II에서 그림은 마치 사진처럼 즉각적으로 그려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화가들은 마무리 작업을 하거나 캔버스 오른쪽의 인물들처럼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작업을 성찰합니다.
이는 브라이슨(Bryson)이 데카르트의 원근법주의(Cartesian perspectivalism)에서 기인한 "지속의 이동성에서 벗어난, 드러난 현존의 영원한 순간 속에서의 시점"입니다. 텐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많은 화가들은 이 "영원한 순간"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그들 앞의 풍경은 정지된 듯하며, 우주선의 배기가스에서 발생하는 증기의 모든 디테일은 화가들이 서 있는 땅의 풀보다도 더 선명하게 생생합니다.
그림 속의 화가들은 각기 동일한 관점에서 사건을 포착하지만, 작품에 자신은 포함시키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의 그림에는 성조기가 없는데, 이는 화가들이 아무리 지우려 해도 분명히 미국적인 관점으로 우주선 발사에 임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상징입니다. (또한 텐시 자신의 미국적 시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작가가 장면을 너무나 절묘하게 구성하여 관람객이 장면 자체에 경외감을 느끼도록 하는 데카르트적 원근법주의(선원근법 또는 투시원근법이라 불리는 것을 미학적 용어로 데카르트적 원근법/Cartesian Perspective이라 부른다)는 자신의 프레이밍을 지우려는 눈입니다. 데카르트적 시각은 자신이 보는 것을 자연스럽고 자명하며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모든 예술가는 여전히 그 순간에 존재합니다.
<Coastline Measure>는 텐시의 창의적이고 기교 넘치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에서 소용돌이치는 바다에서는 다양한 색조가 나타나는데, 이는 텐시의 단일 색상이 파란색과 녹색의 혼합된 것임을 암시하며, 각 색조는 캔버스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드러냅니다. 거대한 파도가 튀어나온 바위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동안, 배경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화적인 규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의 흐름은 절벽에서도 멈추지 않고 바다로 이어지는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 맹렬하게 치솟습니다. 이처럼 파도의 맹렬한 기세에 겁먹은 갈매기들이 육지를 떠나 더 높은 곳으로 피신하고 있네요.
<브리콜러의 딸>은 어떤 작업대 위를 탐험(?)하는 어린 소녀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현대 미술에서 재현의 역할을 비판함으로써 미술사와 비평의 신화에 도전하는 의미를 보여줍니다. 텐시의 그림은 단색조 스타일과 사진적 정밀함이 특징인데, 이는 젯소를 두껍게 칠하고 물감을 겹겹이 바르는 감법 기법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 감법 기법'이란 붓 사용량을 줄여 표현하는 기법으로, 감필법(減筆法)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기법은 대상을 단순화하고 개괄화하여, 형태 모방보다는 작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입니다. 일반적으로 감법 기법은 한국화, 특히 묵화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화에서 감법 기법을 적용하다니 묘한 느낌..
텐시의 회화에서 단색조를 사용하는 그의 방식은 소재보다 형식적 특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또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층을 더하는 대신 제거하는 그의 감법 기법은 이러한 관념을 더욱 강화합니다. 텐시가 적용한 감법 기법이란 한국화에서 감법 기법으로 그리는 방식과 조금 다른 의미인가요?
암튼, <브리콜러의 딸>은 전통적인 표현 방식을 비판하는 동시에 화가로서 그의 기교를 보여주는 독특한 예술적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관람객에게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무엇이 "예술"을 구성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루 강의 근원>은 미술사와 알레고리가 뒤섞인 정교한 그림입니다.
거대한 규모로 그려진 이 그림에서, 텐시는 익명의 인물들이 커다란 입구를 막으려 애쓰는 지하 동굴을 묘사합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높은 금속 울타리 안에서 현역 군인들이 동굴 입구를 막는 거대한 벽을 쌓으려 합니다. 은은한 푸른색의 단색 팔레트로 가려진 텐시의 그림은 사진처럼 정밀하지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미술사 교수의 자녀였던 텐시의 작품은 종종 수수께끼 같은 의미로 점철되어 있는데, 이 작품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 걸작 <루 강의 근원>을 모티브로 삼은 것입니다.
프랑스 아카데미가 선호했던 낭만적 묘사 스타일 대신, 귀스타브 쿠르베는 솔직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세기 중반 프랑스 사실주의 운동의 거장으로 명성을 얻은 쿠르베의 1864년작 <루 강의 근원>에서 쿠르베는 목가적인 풍경 대신, 어둡고 울퉁불퉁한 바위동굴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쿠르베는 고향 마을 오르낭을 흐르는 루 강 하구를 자주 그렸습니다. 사실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쿠르베의 그림은 우화적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루 강의 흐르는 물은 예술가 내면에서 흘러넘치는 창의력을 상징하거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텐시의 <루 강의 근원>에서 인물들은 각기 역할에 여념이 없습니다. 왼쪽 아래에는 헬멧을 쓴 군인 한 명이 거대한 크레인을 조종하여 현장에 콘크리트를 내리는 중이며, 그 인근에서 군복차림의 한 남자가 시계를 확인하며 멈춰 있습니다. 긴 트렌치코트를 입은 두 남자가 현장을 둘러보는 와중에, 작업자들은 엄청난 작업질 중입니다. 오른쪽 아래에서는 빛에 휩싸인 채, 청바지와 민소매 흰색 탱크탑을 입은 작업자가 도르래를 이용해 양동이를 띄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텐시는 전체 장면을 사진처럼 정밀하게 묘사하지만, 현장 분위기는 그가 선호했던 짙은 청록색의 풍부한 변주로 가려져 있습니다. 신비에 싸인 이 장면은 흑백 사진 처럼 보이는 동시에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텐시의 인물들이 멈춰 서서 벽이 쌓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처럼, 관객 또한 장면의 중심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마주하며 텐시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광경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것입니다.
마크 텐시의 1992년 작품 <피카소와 브라크>는 두 예술가가 초기 피카소 콜라주를 본떠 비행기를 띄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단색화는 텐시의 극사실주의 예술 최고의 정밀성을 보여줍니다.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는 입체주의의 선구자입니다. 1910년부터 1912년까지 그는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와 실험적인 교류를 나누었는데 이는 미술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이야기임). 따라서 우리는 텐시의 작품을 통해 이 시대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됩니다.
텐시의 이 작품을 해석하자면,
피카소와 브라크가 피카소의 초기 콜라주를 본떠 비행기를 띄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두 사람의 파트너십과 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텐시의 그림 대부분은 모순적인 구도를 보여줍니다.
마치 정확한 사실주의에 뿌리를 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서로 경쟁하는 이미지들의 뒤죽박죽 섞인 시각적 전문 용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보는 이에게 구도의 기원에 대한 해답보다 더 많은 의문을 남깁니다. 텐시의 표현 기법은 미술사적 지식을 작품 전반에 드러내면서, 유명한 역사적 작품 이미지를 차용하여 자신이 재해석한 장면에 삽입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텐시가 1970년대 뉴욕 헌터 예술대학(Hunter College of the Arts)에서 미술을 전공할 당시,
현대 미술은 사실주의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초현실주의나 추상미술이 주류를 이루었고, 다른 한쪽에선 팝 아트가 기승을 부리던 시대였죠. 하지만 텐시는 이러한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텐시는 예술계가 미니멀리즘으로 전환하면서
"회화의 죽음"에 대한 해결책으로
자신의 예술적 동기를 언급했던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깊이 있는 학문적, 미술사적 지식과 관련된 구상적 이미지에 크게 의존하며, 그의 섬세한 그림에는 주제와 목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텐시의 그림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지만,
최고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연을 배경으로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풍경을 포착해냅니다.
이러한 극적인 풍경화에 매우 복잡한 미술사 이론을 유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방식으로 삽입한 것이 텐시 미술의 특징입니다. 헤지(Hedge)는 아쿠아마린 단일 색상으로 구현되었으며, 섬세하고 사실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어 우아함과 단순함 속에 정교한 렌더링 작업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마치 거장의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듯합니다.
텐시는 단순한 긁어내고 안료를 씻어내는 행위와 섬세한 붓놀림을 통해(앞에서 언급한 감법 기법)
얼음처럼 맑은 결의로 터져 나오는 듯한 환상적인 산의 풍경을 구현해 냅니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것이 겉보기와 같지는 않습니다. 산 아래로 쏟아지는 거대한 눈사태는 마치 하늘에서 쏟아지는 듯하며, 화면 오른쪽 사분면을 따라 격렬한 회오리바람을 만들어냅니다. 텐시는 이러한 격렬한 눈덩이가 언제 시작되고 하늘은 또 어디서 끝나는지 구분하기 어렵게 표현했습니다.
아니면 그 반대일까요? 텐시는 그의 다른 그림에서 아래를 위로, 위를 아래로 표현하는 왜곡된 대칭 감각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미지를 90도 회전시키면 장면에 대한 우리의 인식 전체가 바뀌지만, 그 중력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위는 아래로, 아래로, 위는 아래로, 끝없이 다양한 가능성 속에서 위로 향할 수 있습니다.
헤지(Hedge)에서 중앙 산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반면, 양쪽의 정상과 바닥은 마치 봉우리처럼 보입니다. 얼음과 눈의 흐름은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은 다시 눈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처음 보기에는 풍경처럼 보이는 이 작품 속에서도, 마치 스냅샷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사가 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에 패러글라이더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이죠?
그러나 풍경 자체와 마찬가지로, 이 인물들의 방향은 논쟁의 여지가 있고 불안정합니다. 각 인물은 위아래로 낙하산을 착용하고 있어 중력의 방향과 비행 방향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인물들은 동시에 두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우리가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최고의 예술 작품이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이 걸작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대, 모든 가능성, 결과, 현실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시대를 이야기합니다. 마치 2025년 한국의 정치현실처럼 말입니다.
<Reverb>는 부조리한 구도와 정교한 디테일을 통해
다양한 표현 방식 간의 예상치 못한 연관성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나요?
일단, 작품 제목 ' 리버브(reverb)'는 음향 효과의 한 종류로, 소리가 벽, 천장, 바닥 또는 건물의 다른 부분에서 반사되어 울리는 소리, 즉 잔향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욕실에서 말을 할 때 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반사되어 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리버브 효과라 말합니다.
다시, 작품을 살펴봅니다.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남녀가 액자 그림으로 장식된 벽면 앞에 서서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여성의 눈초리는 대화상대인 남성이 아닌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네요.
잡지와 신문에서 가져온 그림 액자 속에는 우디 앨런(Woody Allen),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그루초 막스(Groucho Marx) 등 여러 문화 아이콘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들은 제각기 대화를 나누거나 연극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습니다.
프레임은 뒤로 물러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이 그린 급강하하는 다이어그램 선으로 변모합니다. 아원자 입자의 수학적 관계를 묘사하는 이 다이어그램은 텐시가 주요 인물들 사이에 설정한 연관성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