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朴壽根) / 3 - 질감화와 결이 다른 작품들
(전회에 이어서)
전반적으로 볼 때,
박수근은 거친 질감과 단색에 가까운 화폭으로 한 시대를 천착하고 천착하고 또 천착했던 화가입니다.
그러나 살펴보면 그가 남긴 결이 조금 다른 작품들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쪽으로 작품 활동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켰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를 다시 살려내서 작품활동의 다양성을 맛보게 해달라고 부탁할 수 없으니
그가 남긴 소수의 결이 다른 작품들을 찾아서 감상하며 그가 물려준 재능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볼 수 있을 뿐입니다.
집, 마을 그리고 풍경화
1960년대 초에 그려진 <초가집>은 이건희 컬렉션 소장품이었다가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1963년 작 <초가집>과 소재, 구도, 하드보드지 화폭 재료 등이 거의 같습니다. 두 작품 모두 특유의 화강암질 마티에르가 보이지 않고 분방하거나 텁텁한 색층의 변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채롭습니다. 박수근 화가가 세간에 알려진 대로 화폭의 배경을 거친 암석 질감으로만 뒤덮지 않고 캔버스의 재료에 따라 능수능란한 기법으로 변주를 모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우물가>는 황토벽에 볏짚으로 이엉을 얹은 초가집 마당에서 우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는 아낙네와 소녀들, 그리고 빨래가 널려 있는 마당 한켠에 닭들이 모이를 쪼고 있는 일상의 풍경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1953년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던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다시 개최되자 서양화부문에 이 작품을 출품하여 특선을 차지했습니다. 박수근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가옥인 초가집을 선택하여 정통 화법에 따라 그리되 질감에만 약간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사실, 농촌 풍경은 박수근이 양구 시절부터 즐겨 그렸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순박한 사람들의 일상을 화폭에 담으려 애썼습니다. 그는 작품에서 소박한 주제와 굵고 명확한 선의 윤곽, 흰색 회갈색 황갈색 주조의 두터운 질감에 명암과 원근감이 거의 배제된 표현법을 적용했는데 이후 이러한 화법은 그의 미술 인생 전체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국전 출품작 대비 크기만 작은 하드보드지에 그린 것으로 전제 구도는 거의 동일합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왼쪽에 있던 닭이 없어진 것뿐입니다. 마티에르(울퉁불퉁한 질감)는 전체적으로 거칠어진 느낌을 줍니다.
작품 <마을>에서도 박수근 화백 특유의 투박한 질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러 채의 초가집이 늘어서 있는 동리길로 보따리를 인채 지나가는 아낙네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멀리 절구질하는 여인네의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소박한 마을 풍경입니다.
북한산 밖 풍경을 담은 작품입니다.
겨울이 지나가는 어름, 나무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때의 산을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군데군데 노란 물을 찍어 바른 것은 봄빛을 표현한 것인 듯합니다.
정물화
<철쭉>은 1933년에 그린 것으로, 박수근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그림 뒷면에 ‘철쭉, 양구, 박수근’이라고 적혀 있어서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했다가 낙선한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꽃 피는 시절>은 화면 가운데 큰 나무를 배치하고 그 양쪽에 작은 나무를 채워 넣은 작품입니다. 제목과 달리 꽃이 피었다는 사실을 관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부드러운 연두색 잎사귀와 진분홍색 꽃망울이 봄임을 알려준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눈이 좋은 사람이 자세히 보면 꽃을 나타내는 분홍색 터치가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봄은 태양이 익어가는 시절, 꽃피는 시절, 신록의 계절로 이어집니다. 꽃피는 시절은 3월 중하순에서 4월 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꽃이 막 피기 시작하는 어름이라면 나무의 전체 모습은 아직 가지만 남아있는 시기에 해당합니다. 아직은 춥지만 곧 봄이 찾아올 것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복사꽃>은 오른쪽으로 뻗은 복사나무 가지에 연분홍 복사꽃이 핀 모습과 가지 끝에 푸른 잎사귀가 막 돋아난 모습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박수근이 1920년대 어린 자신을 화가의 길로 이끌어주었던 보통학교 담임 스승 오득영(1904~1991)에게 선물했던 1952년 작 <도마 위의 조기>입니다. 오득영의 손자가 소장해 왔던 이 <도마 위의 조기>는 10년 뒤에 그린 명작 <굴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62년 작 <굴비>와 비교하면 박수근 화가 특유의 우툴두툴한 질감 효과가 도드라지지 않고 구도도 다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수근은 10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굴비 그림을 총 3점을 남깁니다. 현재 1962년 작 <굴비>는 평론가들에 의해 한국 정물화의 최고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정물화와 달리 도마 위에 칼과 함께 얹혀 있는 굴비 그림입니다. 요리를 하기 직전의 상황인 듯한데 박수근은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듯싶습니다.
<도마 위의 굴비>는 <도마 위의 조기>와 같은 해 그렸지만, 겹쳐진 굴비 모양을 좀 더 단순화시키고, 그 옆에 칼을 놓음으로써 조형적 구성의 변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크기가 가로세로 20㎝ 안팎이지만, 그림 속을 꽉 채운 소재의 밀도감과 화면에 덧칠한 물감층 구사 기법 등을 통해 화풍의 변모를 직관적으로 느끼게 합니다.
작품 <굴비>는 암갈색으로 그려낸 일종의 단색화입니다. 물감을 두텁게 바르고 발라 말리고, 말라가는 물감 위에 물감을 덧씌워서 두 마리의 마른 굴비를 그려내었습니다. 표면이 도드라진 특유의 마티에르 효과 속에 두 굴비가 빚어내는 명료한 형태감과 서로 몸을 포개고 큰 눈과 입을 앙다문 표정에서 나오는 조형적 긴장감이 조화를 이룬 근현대 정물화의 걸작입니다. 사실적 형태에 충실하면서도 특유의 두툼하고 오돌토돌한 마티에르 등의 작가적 개성이 여물게 박혀 있습니다.
1962년 작 <굴비>는 1960년대 초 서울 을지로 반도화랑 직원으로 일하면서 박수근과 인연을 맺었던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이 갖고 있었습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인 1966년, 박명자 회장이 결혼하자 화가의 부인 김복순이 선물로 주었던 것입니다. 박명자 회장은 작품 <굴비>를 1970년 2만 5000원에 팔았다가 2002년 강원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이 개관한 뒤 1만 배가 오른 2억 5000만 원에 되사서 기증한 내력이 있습니다.
<복숭아>는 박수근의 그림 중에서 다양한 색과 공간의 깊이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이례적인 작품입니다.
색이 가미되니 훨씬 보기 좋습니다.
박수근 미술관이 소장 중인 작품은 박수근 화백 생존 당시 김후란 시인에게 선물로 그려준 것으로 뒷면에 ‘사랑’이란 부제가 적혀있습니다. 박수근 화백이 1964년에 제작한 두 점의 <바위와 새> 작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합은 작가가 생전에 좋아했던 꽃으로,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식 때 묘소에 헌화되기도 했습니다.
박수근 특유의 거친 표면 위에 그려진 두 송이 백합꽃이 인상적입니다.
수채화
1961년에 그린 수채화 <고목>은 나무 두 그루를 담은 과감한 구도에 가는 붓질을 가로 세로로 쌓아서 바탕을 칠하여 완성한 작품입니다. ‘ㄱ’ 자 모양과 ‘Y’ 자 모양의 고목을 오른편에 배치하고 이 나무들에서 나온 가지로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고목이라고 하지만 나무에 하얀 꽃과 잎이 가득하여 박수근의 다른 그림과 달리 밝은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잎은 길쭉하고 수피가 세로로 길게 갈라지는 것으로 보아 버드나무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
작품 <고향마을>은 박수근 화백의 맏딸 박인숙 작가가 그린 것으로
강원도 양구 정림리에 있는 자신의 고향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아버지의 화풍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지만 색감은 조금 더 밝고 화사합니다.
이 작품은 박수근 화백의 화풍에 아름다운 색을 칠하는 새로운 시도가 평가해 줄 만합니다. 그러나 구도, 세부내용에 있어서 박수근 화백의 업적에는 못 미치는 것 같아 작품 한 점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 The 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