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e Renoir(오귀스트 르누아르) / 12 - 미성년 인물화(1)
(전회에 이어서)
르누아르가 그린
유아~청소년기의 인물화들을 소개합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림,
행복한 미소가 절로 만들어지게 하는 그림들이 배달됩니다.
<로메인 라스코>는 르누아르가 막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던 23살 시절에 그린 초기작품입니다. 아마도 르누아르가 서명한 최초의 캔버스일 것입니다. 색상과 빛의 민감한 표현은 섬세하고 젊은 아름다움의 이상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배경 커튼과 아이의 흰 블라우스의 밝은 톤은 반투명한 소재에 반사된 빛과 색상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입니다. 특히 어린 소녀의 얼굴에 나타난 섬세한 색상의 뉘앙스는 르누아르가 이전에 도자기 장식가로 훈련을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파리 근처 바르비종(Barbizon) 마을의 예술가 식민지에 머무는 동안 휴가를 보내는 라스코 가족의 의뢰를 받아 이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르누아르는 가난했고 화가로서 생계를 꾸려가야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앞에 두고있던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화가로서 호구지책으로 시도한 것이 초상화작가로 명성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위 작품, 8살의 아델핀 르그랑(Adelphine Legrand) 초상화는 그러한 경력 초기에 그린 것입니다.
손을 꽉 쥐고 주저하는 표정을 한 어린 소녀가 화가 앞에 서서 모델로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서 안도감과 격려를 얻기 위해 화가 너머에 있는 존재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장식이 거의 없는 방에 그려진 아델핀의 초상화는 세부 묘사가 깔끔하지만, 그녀의 검은색 앞치마의 강렬하고 풍부한 색상과 젖은 붓놀림, 목에 매듭을 지은 파란색 스카프, 그리고 그녀 뒤의 녹색 커튼이 지배적입니다. 그녀의 목에서 고르지 않게 매달려 있는 금색 로켓은 마치 앞치마 아래에서 방금 꺼낸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포착합니다.
뜻밖에도 아델핀의 부모는 소시민 계층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점원이었고 어머니는 밀짚모자 제작자였습니다. 의뢰의 상황이나 르누아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지만, 소녀의 부모는 화가 프레데릭 바지유(Frédéric Bazille)와 장바티스트 카르포(Jean-Baptiste Carpeaux)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르누아르는 1893년 아델핀의 결혼식에 참석했는데, 이는 그가 가족의 친구로 남았음을 시사합니다.
야외에서 그려진 이 이중 초상화는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옹호자 중 한 명인 조르주 리비에르(Georges Rivière, 1855-1943)와 알려지지 않은 젊은 여성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은 화가의 여러 그림에 등장합니다. 르누아르는 1870년대에 그를 파리 살롱에 소개한 조르주 리비에르의 개별 초상화를 여러 개 그렸습니다. 그의 딸 엘렌 리비에르(Hélène Rivière)는 르누아르의 조카인 에드몽 르누아르(Edmond Renoir)와 결혼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머리와 어깨를 마주보고 있는 두 인물은 녹색 배경에서 돋보이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대조는 그들의 어두운 옷으로 강조되며, 앙상블을 밝게 하는 것은 흰색 칼라와 얼굴뿐입니다. 조르주 리비에르는 젊은 여성을 열심히 응시하고 있고,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그림에서 달콤함이 느껴집니다. 두 인물은 초점이 맞지 않게 묘사되었는데 이는 르누아르가 빛에 관심을 집중한 탓으로 보입니다.
<물뿌리개를 든 소녀>는 인형같은 어린소녀의 순수함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인데, 클로드 모네의 정원 아르 장 퇴유에서 동네 소녀 중 한 명을 그린 것입니다. 이 작품은 르누아르의 가장 인기있는 그림의 하나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르누아르는 여성 혹은 어린이를 소재로 밝은 풍의 그림을 그리면 잘 팔릴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해집니다. 이거, 중요한 point일 수 있습니다. 르누아르가 평생에 걸쳐 행복한 모습의 여성인물을 집중적으로 그린 이유의 한 근거라고 여겨지니 말입니다.
그래서 르누아르는 짙은 푸른색 옷, 밝은 붉은색 리본과 입술로 대표되는 소녀를 푸른 정원을 배경으로 밝고 선명하게 그렸습니다. 르누아르는 물감을 섞어서 색깔을 만들기 보다는 각각의 붓터치로 경계를 겹치게 함으로써 빛이 일렁이는 효과를 내는 기법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기법이 담겨있습니다.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경력 초기 수십 년 동안 Pierre-Auguste Renoir는 초상화 커미션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습니다. 이 초상화의 모델인 장 뒤랑-뤼엘은 Albert Barnes가 르누아르 작품의 거의 절반을 구입했던 위대한 인상파 상인 Paul Durand-Ruel(폴 뒤랑-뤼엘)의 딸입니다. 이 그림은 르누아르가 회화의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반대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소녀의 머리카락에 보라색이 흐트러져 있음을 보듯 색상은 실험적이며 현대적입니다. 반면 전반적인 형식은 17세기의 법정 초상화 관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작품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햇빛의 일렁임을 묘사하는 그의 붓질의 흔적이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꽃무늬의 일렁거림이 바로 그것인데 어린날 누구나 마음을 빼앗겨보았던 반짝이는 햇살의 광채와 황홀함이 이 작품에서도 새어나오는 듯합니다. 소녀의 얼굴에서는 아이답지 않은 조숙함? 혹은 진지함이 살짝 엿보이기도 합니다.
파리의 4개 상설 서커스 중 하나인 Cirque Fernando는 1875년 몽마르트르에서 문을 열었고, 인상파 서클의 구성원을 포함한 열광적인 추종자들을 모았습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독일 순회 곡예단의 구성원인 프란치스카 바르텐베르크(Francisca Wartenberg, 왼쪽)와 그녀의 자매 앙헬리나(Angelina, 오른쪽)를 그렸습니다. 각각 17세와 14세인 소녀들이 공연 후 인사를 하고, 관객이 경의를 표하기 위해 던진 티슈로 싼 오렌지를 모으는 장면이 담겨있습니다.
르누아르의 <이렌느 깡 단베르 양의 초상>은 매우 유명한 작품입니다. 왼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어린 소녀의 이 그림은 '작은 이렌'이라는 뜻의 라 쁘띠 이렌이라고 불립니다. 그녀는 파리 부유한 은행가 '루이 깡 단베르(Louis Cahen d'Anvers)'의 딸이었습니다.
르누아르가 초상화를 다 그렸을 때, 깡 단베르(Cahen d'Anvers) 씨는 그 초상화들이 극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집'이라고 불렸던, 파리에 자신이 소유하던 호텔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단베르 가에서는 르누아르에게 대금을 제때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끝날 때까지도 대금에 합의를 보지 못했고, 결국 르누아르는 초상화들에 대한 대금으로 1500프랑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때까지 르누아르가 받았던 어떤 액수보다 많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급의 고객들이 그림의 대가로 일반적으로 지급되는 대금보다는 현저히 낮은 금액이었습니다.
이후 이 그림은 우아한 옷과 스타일링된 머리 스타일에 어린 시절의 순진한 표정을 결합한 아동 초상화의 빛나는 사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히 매력적인 것은 느슨한 붉은 머리카락과 배경 잎의 소용돌이치는 점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소녀의 얼굴에 정교하게 표현된 특징으로 형성되는 대조입니다. 얼굴묘사의 정밀함은 르누아르가 파리에서 스위스 화가 샤를 글레이르(Charles Gleyre)의 지도를 받기 전 도자기 화가로 일했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이 작품은 파리의 유명 미술관장 장마리포르튀네 뒤랑(Jean-Marie-Fortuné Durand)과 그의 아내 마리 뤼엘(Marie Ruel)의 아들인 폴 뒤랑-뤼엘(Paul Durand-Ruel)의 두 딸을 그린 이중 초상화입니다. 모자를 벗은 어린 소녀 잔(Jeanne)과 마리테레즈(Marie-Therese)는 밝은 색의 여름 드레스를 입고 정원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1882년 8월 르누아르는 폴 뒤랑-뤼엘(Paul Durand-Ruel)의 요청에 따라 뒤랑-뤼엘의 다섯 자녀를 그린 일련의 초상화를 완성했습니다. 뒤랑-뤼엘은 일찍부터 인상파를 옹호하고 지원했던 진보적인 파리 미술상이었습니다. 이 매력적인 이중 초상화에서 14세의 마리테레즈와 여동생 잔은 가족이 휴가를 보내고 있던 프랑스 디에프(Dieppe)에 있는 여름 별장 정원에서 르누아르를 위해 포즈를 취한 것입니다.
완전히 야외에서 그린 이 초상화는 1870년대 후반 르누아르의 "순수" 인상파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생생한 팔레트와 강렬한 붓놀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밤나무 사이로 비치는 얼룩덜룩한 여름 햇살의 변화하는 효과를 묘사하였는데 어디서 본듯 하지 않나요? 그 유명한 무도회장 그림의 일렁거리는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르누아르가 1876년에 제작한 불세출의 명작 <Ball at the Moulin de la Galette>말입니다.
(계속)